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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Lee O Young(이어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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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Lee O Young
Family Name
Lee
First Name
O Young
Middle Name
-
Preferred Name
Lee O Young
Pen Name
Lee Oyoung, 李御宁, I Eo-Ryeong
ISNI
0000000081741505
Birth
1934
Death
-
Occupation
Literary critic
Period
Modern
Representative Works
-
  • Descriptions
  • English(English)
  • Spanish(Español)
  • French(Français)
  • Japanese(日本語)
  • Korean(한국어)

Lee O Young (1934 – 2022) was a South Korean critic and novelist.


Life 

    Lee O Young was born on 15 January 1934, in Asan, South Chungcheong Province. Lee went to Buyeo High School and Seoul National University, where he studied Korean literature. His first piece of literary criticism was published in the magazine of Seoul National University's humanities department in 1955, while he was still an undergraduate, "Yisangnon: sunsuuisigui noeokgwa geu pabyeok" (이상론 - 순수의식의 뇌옥과 그 파벽 On Yi Sang: The Prison of Pure Consciousness and Its Destruction). He made his formal debut as a critic in 1956, publishing "Biyubeomnongo" (비유법논고 A Treatise on Metaphor) in the journal Munhagyesul.

    Lee taught at Ewha Womans University, where he was a professor emeritus, and Dankook University. He was also editor-in-chief of the monthly Literature & Thought and Korea's first Minister of Culture at the time of the 1988 Olympic Games. 

    Lee died from cancer on 26 February 2022, at the age of 88.


Writing

    Lee was one of the most prominent figures to emerge from the post-war generation of Korean critics. Making his mark with his first piece of literary criticism, "Yisangnon: sunsuuisigui noeokgwa geu pabyeok," he caused a stir in literary circles with his next essay, "Usangui pagoe" (우상의 파괴 Destroying Idols), published in the Hankook Ilbo in 1956. In the essay, he tore down literary greats such as Kim Dong-ni, Cho Hyang, Lee Mu-young, and Choi Il-su, and sharply criticized Hwang Sun-Won, Cho Yeon-hyeon, Yom Sang-seop, and So Chong-ju. At a time when the war experience seemed to have devastated the literary imagination as well, Lee argued for the expansion and enrichment of Korean literature in articles that featured considerable rhetorical sophistication and verve.

    In 1961, Lee began his career in journalism writing editorials for the Seoul Shinmun. He became a prolific columnist and essayist, writing for such papers as the Hankook Ilbo, the Kyunghyang Shinmun, the JoongAng Ilbo, and the Chosun Ilbo. In particular, his column "Heung soge jeo baram soge"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In This Earth & In That Wind), which ran in the Kyunghyang Shinmun over a period of four months, became a touchstone for the generation. The resulting book sold over 30,0000 copies, and was later translated into English by the historian David I. Steinberg. 

    The translator's preface to the book offers insight into typical characteristics of Lee's writing: "These essays do not attempt to be definitive and should not be so interpreted. They are not supported by social science data which can be verified. They were written in a conversational style of Korean, rather informally. Yet each one offers to the reader some new concept, a different perspective, a penetrating idea which can be the subject of reflection. These essays are thus in a sense poetical—they are composed of insights and glimpses beyond reality on which the reader will be able to expand and through which he may wish to reconsider the nature of his experience in Korea. The essays therefore are often controversial. If they were not, they would have little value. The ideas presented are points of view from which further discussion will naturally be evoked."[1] 


References

[1] Translator’s preface. p.viii. Lee, O-Young. In This Earth & in That Wind: This Is Korea. Translated by David I. Steinberg, Seoul, Korea, Published for RAS-KB by Seoul Computer Press, 1967.


Lee O Young fue una de las figuras prominentes de la generación de críticos coreanos de posguerra. Sentó su huella con su primera obra de crítica literaria Sobre Yi Sang (Lee Sang non, 1955). Causó conmoción en los círculos literarios con su siguiente ensayo "Destrucción de un ídolo" (Usang eui pagoe), publicado en el periódico Hankook Ilbo en 1956. En un momento en el que la guerra parecía haber acabado con la imaginación literaria, Lee O Young defendió la expansión y el enriquecimiento de la literatura coreana en artículos de una considerable sofisticación retórica e ímpetu, que se reunieron en el volumen Un tratado sobre la metáfora.5

 

Il a été l'une des figures les plus en vue dans le domaine de la critique littéraire parmi la génération d'après-guerre. Il s'est d'abord fait remarquer avec sa critique intitulée Sur Yi Sang (Yi Sang non, 1955). Il a ensuite fait sensation dans les cercles littéraires avec sa deuxième critique intitulée La destruction d'une idole (Usang-ui pagoe), publiée dans le journal Hankook Ilbo en 1956. À l'heure où l'expérience de la guerre semblait avoir dévasté l'imagination littéraire, Lee O-young a plaidé pour l'élargissement et l'enrichissement de la littérature coréenne dans des articles qui comportaient une sophistication rhétorique considérable et beaucoup d'entrain, caractéristiques que l'on retrouve dans l'une de ses critiques les plus connues Traité sur les figures (Biyubeop nongo)4.

 

韓国忠清南道牙山郡温陽邑左部里生まれ。ソウル大学校国文科卒、同大学院修了、大学院碩士。文学博士。朝鮮日報などの論説委員、梨花女子大学教授、碩学教授、記号学研究所長を経て、同大学学術院名誉碩座教授・中央日報社常任顧問、財)韓中日比較文化研究所理事長。1981-1982年、東京大学比較文学比較文化研究室客員研究員。1988年、ソウルオリンピックの開閉会式等文化企画を主導。1989年、盧泰愚大統領の政府に於いて初代文化相に任命された。2000年、新千年準備委員会委員長(大統領直属)。
1982年、日本語で書かれて出版された『「縮み」志向の日本人』(学生社)はベストセラーになり、国際交流基金大賞受賞。同書では、従来の日本の比較文化論が日本と西洋の比較でしかなかったことを批判し、土居健郎の「甘え」概念について、日本独特というが、単に西洋にはないだけで韓国にもそれに相当する語はあると批判した。
2008年、『蛙はなぜ古池に飛びこんだか』(学生社)により、正岡子規国際俳句賞スウェーデン賞受賞。
韓国では『李御寧全集』(22巻)のほか多数の著書がある。

 

이어령(1934~2022)은 대한민국의 비평가다.  


생애

이어령은 1934년 충청남도 아산에서 태어났다. 호는 능소(凌宵). 부여고교를 거쳐 1956년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하였으며 1959년에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55년 서울대학교 교내지 《문리대학보》에 〈이상론(李箱論)〉을 발표하여 평론가로서의 가능성을 보였고, 1956년 《한국일보》에 〈우상의 파괴〉를 발표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같은 해 《문학예술》에 〈현대시의 환위와 한계〉와 〈비유법논고(攷)〉가 추천된 후,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등단 뒤 〈화전민 지역〉 등 다수의 평론을 통해 한국문학이 새로운 터전을 마련해야 할 것을 주장하고, 이데올로기와 독재체제의 금제(禁制)에 맞서 문학이 저항적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여 ‘저항의 문학’을 기치로 한 전후세대의 대표적인 이론가로 활동했다. 한편 1959년에는  김동리와 ‘작품의 실존성’에 관해, 조연현과는 ‘전통논쟁’을 벌였다. 1959년에는 첫 평론집 《저항의 문학》을 간행했고, 1963년에는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라는 연작 에세이를 간행, 선풍적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이후 소설 창작에도 관심을 기울여, 단편편소설 〈장군의 수염〉(1966), 〈무익조〉(1966), 〈암살자〉(1966), 〈환각의 다리〉(1969) 등의 작품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당대의 비평가 김춘수·고석규·이철범 등과 함께 현대평론가협회 동인으로 활약하면서 경기고등학교 교사, 단국대학교 전임강사,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를 지냈으며, 1999년 2월부터 2022년에 별세할 때까지 동교 명예교수를 지냈다. 그 외에도 2001년 8월부터 2012년 8월까지 배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좌교수를 지냈으며 2012년 8월부터 2022년까지 배재대학교 한류문화산업대학원 석학교수를 지냈다. 한편 이어령은 1990년 노태우 정부에서 문화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1990년 1월 3일부터 1991년 12월 19일까지 문화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2009년에는 ‘경기 디지로그 창조학교’를 설립하여 명예교장을 맡았다. 배우자인 문학 평론가인 강인숙과 영인문학관을 운영하였다. 2022년 세상을 떠났다. 


작품 세계 

이어령은 1956년 한국일보에 문학평론 〈우상의 파괴〉를 발표하여 주목을 받았다. 작가는 〈우상의 파괴〉에서 김동리를 '미몽(迷夢)의 우상', 이무영을 '우매(愚昧)의 우상'으로, 그리고 당시의 작가들 중 황순원, 조연현, 염상섭, 서정주 등을 '현대의 신라인들'로 묶어 신랄한 비평을 가했다. 이어령은 한국 문학은 전통적인 세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방향과 토대를 만들어야 할 것을 주장했으며, 이데올로기와 독재 체제에 맞서 문학이 저항적 기능을 수행해야 함을 역설하였다. 1959년, '작품의 실존성'을 문제로 김동리와 논쟁을 하고, 조연현과 '전통논쟁'도 펼쳤다. 특히 1959년 3월 한 신문을 통해 전개된 소설가 김동리와 이어령 사이의 논쟁은 한국의 문단사에서 은유와 비문(非文)에 관한 격렬한 논쟁으로 기록된다. 

주요 평론으로 〈화전민 지역〉(1957), 〈신화 없는 민족〉(1957), 〈카타르시스 문학론〉(1957), 〈해학의 미적 범주〉(1958~1959), 〈작가의 현실참여〉(1959) 등이 있다. 특히 그는 〈화전민 지역〉, 〈신화 없는 민족〉 등에서 우리 문학의 불모지적 상황에서 새로운 터전을 닦아야 할 것을 주장했고, 또한 《저항의 문학》(1959)에서 문학이 억압적 현실에 맞서 저항적 기능을 수행해야 함을 역설했다. 

이어령은 1956년 평론가로 등단한 초기에는 문단 안에서 한국 문학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주로 비평을 했다면, 1970년대 이후에는 다양한 형식과 매체를 통해 한국과 한국인이 나아가야 할 방향 그리고 문명과 세계에 대해서 담론을 생성하고 주도했다.   


주요 작품  

1) 전집

《이어령전작집》(전 12권), 동화출판공사, 1969.


2) 소설집

《장군의 수염》, 현암사, 1966.

《전쟁 데카메론》, 현암사, 1966. 

《환각의 다리》, 서음, 1969.


3) 시집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문학세계사, 2008(개정판, 열림원, 2010).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유고시집), 열림원, 2022. 


4) 수필집 

《지성의 오솔길》, 동양출판사, 1962.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현암사, 1963. (개정판, 문학사상사, 2008).

《통금시대의 문학》, 삼중당, 1966. 

《젊은이여 어디로 가는가》, 기린원, 1996(문학사상사, 2003).

《차 한 잔의 사상》, 문학사상사, 2003.

《신화 속의 한국정신》, 문학사상사, 2003.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문학사상사, 2002(개정판, 2009).

《큰 산과 나》, 국학자료원, 2011.

《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 열림원, 2010(개정판, 2022).

《너 어떻게 살래》, 파람북, 2022.

《거시기 머시기》, 김영사, 2022.

《눈물 한 방울》, 김영사, 2022.

《작별》(유고집), 성안당, 2022.


5) 기타  

《저항의 문학》, 경지사, 1959(개정판, 문학사상사, 2003)

《전후문학의 새물결》, 신구문화사, 1962.

《시 다시 읽기 : 한국 시의 기호론적 접근》, 문학사상사, 1995.

《공간의 기호학》, 민음사, 2000.

《세계지성과의 대화》, 문학사상사, 2004.

《국화》, 종이나라, 2006.

《축소지향의 일본인》, 기린원, 1986(개정판, 문학사상사, 2008).

《하이쿠의 시학》, 서정시학, 2009.

《생명이 자본이다》, 마로니에북스, 2013.

《읽고 싶은 이어령》, 여백, 2014.

《우리 문화 박물지》, 디자인하우스, 2007(개정판, 2022).


수상 내역

1979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1989년 체육훈장 맹호장

1992년 일본 디자인문화상

1996년 일본 국제교류기금 대상

2001년 서울시문화상(문학부문)

2003년 제48회 대한민국 예술원상(문학부문)

2007년 제2회 마크 오브 리스펙트상

2009년 마사오카 시키 국제 하이쿠상

2009년 제2회 한민족문화예술대상 문학부문상

2011년 제24회 기독교문화대상 시상식 문학특상

2011년 제20회 소충 사선문화상 특별상

2020년 제11회 홍진기 창조인상 특별상

2021년 제50회 문화의 날 금관문화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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